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 한 줄기 희망을 품었습니다. 의사에게 숨김없이 모든 증상을 털어놓았고, 마침내 병명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경도 우울증”, “범불안장애”, “공황장애 초기”. 처방전을 손에 쥐고 약국 문을 나서는 순간, 이제 정말 괜찮아질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샘솟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놀랍게도 조금씩 변화가 느껴졌습니다. 밤마다 찾아오던 불면이 줄어들고, 늘 짓누르던 불안감이 희미해졌으며, 날카롭게 곤두서 있던 감정의 파도가 잠시 잔잔해졌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몸은 점점 둔해지고, 머릿속은 늘 무거운 안개로 덮인 듯 답답했으며, 마음은 이전보다 더 깊은 무기력감에 잠식되었습니다. 가끔은 스스로에게 묻곤 했습니다. “이게 정말 내가 좋아진 걸까, 아니면 그저 감각이 무뎌진 것뿐일까?” 처방받는 약의 용량은 점점 높아지고, 종류는 늘어나는데… 마음속 깊은 곳에는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과 끊임없는 의문이 자라기 시작합니다. “분명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는데, 왜 나는 여전히 이렇게 힘들까?”
한국의 항우울제 사용량은 지난 10년 동안 무려 3배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공황장애 진단 후 5년이 넘도록 여전히 약물치료를 지속하고 있는 환자 비율은 절반을 훌쩍 넘습니다. 놀랍게도, 항불안제 복용을 중단한 후 단 3개월 이내에 증상이 재발하는 비율은 무려 50~60%에 달합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약의 효과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약물은 분명히 급한 불을 끄듯 일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그 약이 마치 모든 문제의 만능 해결책인 것처럼 사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항우울제, 항불안제, 수면제는 대부분 뇌 속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조절하는 화학적인 약물입니다. 대표적으로 우리의 감정과 밀접하게 관련된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같은 화학물질들이 그 대상입니다. 세로토닌의 경우, 필수 아미노산인 트립토판에서 5-HTP(5-히드록시트립토판)를 거쳐 생합성되며, 이 과정에는 비타민 B6, 마그네슘, 철, 엽산 등의 영양소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그 화학물질의 불균형은 도대체 왜, 그리고 어떻게 시작된 걸까?”
예를 들어, 뇌 속 세로토닌이 부족하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그 소중한 세로토닌이 우리 몸 어디에서 만들어지고, 어떤 이유로 감소하게 되었으며, 근본적으로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듣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마치 눈앞에 보이는 결과(=신경전달물질 불균형)만을 쫓아, 외부에서 인위적인 조절자(=약물)를 투입하는 데 너무나 익숙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복잡한 감정은 결코 좁은 뇌 안에서만 홀로 만들어지는 단순한 현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면역 체계, 영양 상태, 수면 습관, 스트레스 수준, 호르몬 균형, 심지어 ‘제2의 뇌’라고 불리는 장 건강 등 온몸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의 복잡하고 미묘한 상호작용 속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습니다.
약물의 효과가 점차 줄어드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장기적인 약물 복용은 뇌 신경세포의 수용체 민감도를 떨어뜨리거나 수용체 수를 감소시켜 약물에 대한 반응성을 낮출 수 있습니다. 또한, 약물은 일시적으로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맞추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근본적인 신경망의 재조정(리셋)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약물 중단 후 증상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많은 환자들이 진솔하게 털어놓습니다. “약을 먹으면 당장의 증상이 가라앉는 건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제가 정말로 스스로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아요.” “그냥 억지로 붙잡고, 간신히 관리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들의 말은 너무나 정확합니다. 지금의 대부분의 정신과 시스템은 일시적인 증상 조절을 주된 목표로 삼는 치료입니다. 반면, 정말로 많은 환자들이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 건강해지는 회복입니다.
삶의 진정한 활력, 억지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 자발적인 감정의 안정, 더 이상 외부의 힘(=약물)에 의존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감정의 튼튼한 면역력’. 이것들은 단순히 약의 용량을 늘리거나 종류를 바꾼다고 결코 얻을 수 있는 값싼 것들이 아닙니다.
덧붙여 생각해 볼 의학적 관점
항우울제 복용은 간의 약물 해독 효소인 P450 효소의 활성을 높여 간에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또한, 장기간의 항우울제나 수면제 복용은 장내 미생물 생태계의 불균형을 초래하여 다양한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일부 연구에서는 특정 항우울제 복용과 비타민 B12 결핍, 항불안제 복용과 마그네슘 고갈 사이의 연관성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기능의학에서는 정신과 약물의 역할을 증상 완화를 위한 ‘수단’으로 제한적으로 보고, 개인의 생화학적 특성, 영양 상태, 호르몬 균형, 염증 수준 등 전신 기능의 최적화를 통해 근본적인 회복을 추구하는 통합적인 접근 방식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이제 지금까지와는 다른 질문들을 던져야 합니다. “이 끊임없는 불안은 도대체 왜,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나의 소화기관이자 감정의 중요한 터전인 장과, 우리 몸의 방어 시스템인 면역은 지금 어떤 균형 상태에 있을까?” “나는 매일 밤 충분히 깊은 잠을 자고 있는가, 그리고 내 몸에 진정으로 필요한 영양을 제대로 섭취하고 있는가?” “내 몸이 끊임없이 보내고 있는 작지만 중요한 신호들을, 혹시 내가 무심코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우리는 눈에 보이는 증상을 ‘억지로 막는 방법’에만 급급했다면, 앞으로는 그 고통스러운 증상이 근본적으로 왜 생겨났는지 세밀하게 추적하는 근본적인 회복 의학이 절실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더 강력한 약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우리 몸에 대한 더 깊고 진솔한 질문입니다. 이 책은 바로 그 간절한 질문의 진정한 답을 찾아 함께 떠나는 여정의 믿음직한 지도를 그리고자 합니다.